찰스 다윈
진화론을 만든 19세기 영국 과학자. '자연선택'으로 생물 변화를 설명한 사람.
찰스 다윈은 200년 전쯤 태어난 영국 사람이에요.
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동식물을 관찰했어요.
그러다가 '생물은 환경에 잘 맞는 쪽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'는 생각을 세웠어요. 이걸 '자연선택'이라고 불러요.
이 생각을 담은 책이 「종의 기원」이에요. 그때는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어요.
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라는 섬에서 특히 많은 걸 관찰했어요. 그래서 그 섬 근처에는 아예 '다윈섬'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어요.
다윈은 식물도 곤충을 잡아먹을 수 있다고 예측했는데, 150년이 지나서야 과학자들이 그게 진짜 맞다는 걸 확인했어요.
간지럼에 대해서도 다윈이 남긴 말이 있는데, 최근 연구에서 그 말이 맞았다는 게 밝혀졌어요.
다윈이 태어난 날을 기념해서 '다윈의 날'이라고 부르는 날도 있어요.
이렇게 다윈은 지금도 여러 분야 연구에서 계속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에요.
- 갈라파고스 핀치새들이 사실은 다 다른 종이었다는 걸 다윈 본인은 처음엔 몰랐다는데, 그럼 누가 먼저 알아챘을까?
- 다윈이 노예제도를 그렇게 싫어했다는데, 그 경험이 그의 이론에는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?
- 다윈과 월리스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건 우연일까, 시대의 흐름이었을까?
다윈의 생각은 책상 위에서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에요.
1831년, 스물두 살 다윈은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비글호라는 탐사선에 민간인 신분으로 올라탔어요[1].
거의 5년 동안 남아메리카, 갈라파고스 제도,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곳을 돌며 탐사했어요[1].
항해 중에는 배보다 육지에서 지질을 조사하고 화석·표본을 모으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썼어요[1].
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본 흉내지빠귀와 거북이가 섬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아채면서 생각이 커졌어요[1].
영국에 돌아온 뒤에도 20년 넘게 자료를 정리하다가, 1858년 월리스라는 사람이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담은 논문을 보내와서 깜짝 놀랐고, 결국 함께 발표하게 됐어요[1].
그 다음 해인 1859년에야 「종의 기원」이 세상에 나왔어요[1].
다윈은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[1].
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도 박물학자였고, 노예제도에 반대하던 진보적인 지식인이었어요[1].
외할아버지는 영국 도자기 산업을 일으킨 조사이아 웨지우드였고요[1].
다윈은 그 웨지우드 집안의 딸, 그러니까 외사촌 누나였던 엠마 웨지우드와 결혼했어요[1].
엠마는 독일어 등 5개 언어를 할 줄 알아서, 다윈의 연구를 번역으로 많이 도와줬어요[1].
아버지는 다윈이 의사나 성공회 신부가 되길 바랐지만, 다윈 자신은 곤충 채집과 동물 관찰에 더 끌렸어요[1].
다윈은 표본을 모으고 기록하는 식으로 이론을 쌓아갔어요.
비글호 항해 전에 흑인 해방노예 존 에드먼스턴에게 배운 동물 박제법이 나중에 표본 만들 때 큰 도움이 됐어요[1].
지질학 자료, 딱정벌레, 해양 무척추동물 표본을 모으고 편지와 함께 영국으로 보냈어요[1].
1837년 '적색 메모장'에 처음으로 종이 변한다는 생각을 적었고, 1842년에는 자연선택 이론을 35쪽짜리 초고로 연필로 썼어요[1].
그렇게 20여 년 모은 관찰과 기록이 1859년 「종의 기원」이라는 책 한 권으로 완성됐어요[1].
- 찰스 다윈 — 한국어 위키백과 한국어 위키백과 · 2026-08-16